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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신대륙 탐험 오스만 투르크가 실크로드를 장악하자 유럽 사람들은 인도로 가는 뱃길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이 시기 여러 위대한 탐험가들의 항해가 시작됐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이탈리아 사람이었던 콜럼버스는 인도에 가기위해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갈 것이 아니라, 반대로 대서양 쪽을 가로질러 가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뱃길을 연구한다. 탐험에 필요한 돈을 구하기 위해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국왕에게 찾아갔지만 거절당하고, 스페인의 페르난도와 이사벨 여왕에게 지원을 받게 된다. 콜럼버스는 1492년 니냐, 핀타, 산타 마리아라는 세척의 배를 끌고 서쪽으로 향한다. 실패의 기운이 감돌 무렵 콜럼버스는 육지를 발견한다. 콜럼버스는 그 땅이 인도라고 생각하고 원주민들에게 인디언이라는 이름까지 붙였지만, 그곳은 미국 플로리다 주의 연.. 더보기
이스라엘 건국과 로스차일드 시오니즘 '시온으로 돌아가자'라는 말로 민족국가 수립의 염원을 담은 말이다. 시온은 유대교에게 영원한 고향이자 구원의 이름을 대표한다. 1897년 8월 29일 스웨스 바젤에서 오스트리아 언론인 테오도르 헤르츨의 주도아래 '유대인 국가를 세운다'는 역사적인 결의문인 바젤강령이 채택된다. 헤르츨에 의해 지속적으로 운동이 계속 되다가, 1905년 러시아 혁명이 실패하고 대학살이 일어나자 많은 러시아 출신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를 감행한다. 또한 러시아가 반유대주의를 정책으로 삼으면서 예루살렘에 많은 유대인이 모이게 된다. 이때 에드몽 제임스 로스차일드가 유대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재정지원을 한다. 그로인해 예루살렘은 유대인의 도시로 바뀌기 시작했다. 영국은 1차세계대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아랍과 유대인.. 더보기
금융시장의 뿌리_ 로스차일드 가문(2) 1812년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는 사망하며 이런 유언을 남겼다. 첫째, 가문 은행의 요직은 반드시 가문 내부에서 맡아야 한다. 남자만이 상업 활동을 할 수 있다. 둘째, 사촌끼리 결혼함으로써 재산의 외부 유출을 막아라. 셋째, 재산 상황을 절대 외부에 공개하지 말라. 넷째, 재산상속시 변호사를 개입시키지 말라. 다섯째, 장자가 우두머리다. 가족이 만장일치로 동의할 경우에만 차남을 후계자로 할 수 있다. 유서 내용 위반자는 재산 상속 건 일체를 박탈한다. 아버지와 함께 유럽전역에서 금융업을 일으키던 로스차일드의 다섯 아들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크게 활약했다. 1806년 나폴레옹이 대륙 봉쇄령을 내려 유럽의 공산품 가격이 폭등했을 때는 밀수 루트를 통해 유럽 전역에 물품을 대며 크게 돈을 번다. 이.. 더보기
금융시장의 뿌리_ 로스차일드 가문(1) 유대인 역사의 클라이 맥스는 사실상 로스차일드가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전까지는 스페인계 세파르디 유대인들이 주도해 왔다면, 로스차일드가 이후로는 독일계 아슈케나지가 유대인 사회를 주도하게 된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국제적인 대규모 금융산업을 일으킨 로스차일드 가문을 알지 못하고는 오늘날 세계 금융시장의 뿌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유대인 이야기 p.476 로스차일드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게토 출신이다(게토: 중세 이후의 유럽 각 지역에서 유대인을 강제 격리하기 위해 설정한 유대인 거주지역). 독일 국내적으로는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대자본이 필요했고, 국제적으로는 무역증가에 따른 대금결제의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또한 유럽이 나폴레옹전쟁으로 휩쓸리고 있었다. 로스차일드는 이런 어려운 시기에 다.. 더보기
천국과 지옥의 이혼_ C.S. 루이스 바쁜 삶 가운데 또 한권의 소설을 읽게 됐다. 소설은 한번 읽기 시작해 매력을 느끼게 되면 계속 읽고 싶은 마력을 가지고 있다. 너무 두꺼운 책이면 좀 어렵지만, 책 속 분위기에 젖고 싶어 하루, 이틀 사이에 뚝딱 읽게 되는 거 같다. C.S.루이스 C.S. 루이스는 우리가 잘 아는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이다. 영국에서 태어났고, 1898년에 태어나 1963년에 죽었으니 우리와 멀지 않은 세대를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신앙을 버리고 완고한 무신론자로 살아가다가 1929년 회심후 치밀하면서도 문학적인 문체로 뛰어난 저작들을 남겼다. 요번에 조사하다 알게 된 것은 C.S. 루이스는 회심 이후에만 책을 썼다는 것인데, 그의 회심은 절친으로 알려진 '반지의 제왕'의 저자 J.R.R.. 더보기
(중세) 인도의 무굴제국 인도의 황금시대였던 굽타 왕조 이후 훈족이 쳐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인도는 다시 여러 개의 왕국으로 쪼개졌다. 그중 가장 큰 왕국은 델리 시 주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슬란 교도 전사가 그 왕국을 정복해 술탄이 된다. 무굴왕조의 시작, 바부르 오스만 투르크의 변방의 지도자였던 이슬람교도 왕자 바부르(칭기즈칸의 직계 후손)가 자신의 나라에서 쫓겨나게 되면서 델리 시 술탄의 왕국에 쳐들어간다. 병력은 약했지만, 전쟁에서 이겼고, 바부르는 스스로를 황제라 칭한다. 이후에도 주변 왕국들을 정복해나갔고, 인도의 힌두교도들을 존중하고 법을 지키며 교육을 시키는 등 인도를 번영케 한다. 바부르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그라 강둑 곳곳에 아름다운 정원을 꾸민다. 정원에 물이 흐를 수 있도록 물레방아를 설치하고, 삼.. 더보기
(중세) 아프리카 유럽 사람들에게는 "암흑의 대륙"이라고 불렸던 아프리카 대륙은 북부 해변과 사하라 사막 밑으로 열대우림, 초원, 강과 언덕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지역은 유목민들이 살아왔기에 기록이 없지만, 서 아프리카의 왕국은 유럽 사람들과의 왕래로 기록이 남겨져 있다. 서 아프리카의 가장 큰 왕국은 가나, 말리, 송가이였다. 가나 왕국 가나 왕국은 농경사회를 이루었고, 농기구와 무기를 만들기도 했는데 대장장이들은 마술사 같은 대접을 받기도 했다. 이 시기 아랍상인들은 북 아프리카의 소금을 가지고 내려가 남 아프리카의 금을 사는 식으로 무역을 진행하였는데, 길목에 자리하고 있던 가나 왕국이 통행세를 받으면서 부유해졌다. 역사가 알 바크리의 가나 왕국 묘사 국왕은 금 목걸이와 글 팔찌를 했고, 금을 촘촘히 박은 모.. 더보기
(중세) 스페인과 포르투갈 이사벨 여왕의 스페인 재정복 이후, 스페인 지역은 아라곤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 서쪽 해안 지대의 포르투갈로 나뉘게 되었다. 스페인 건국 카스티야 왕국의 엔리케 국왕은 카스티야를 가장 강력한 왕국으로 만들고 싶어 여동생 이사벨과 페드로 기론이라는 유명한 전사의 결혼식을 주선한다. 하지만, 이사벨은 그 결혼을 원하지 않았다. 또다시 포르투갈의 국왕과의 결혼을 주선했지만, 여동생 이사벨은 그 결혼을 원하지 않았고, 대신 아라곤 왕국의 왕자인 페르난도와 결혼한다. 결국 엔리케가 죽자 카스티야의 여왕 이사벨과 아라곤의 왕 페르난도는 두 왕국을 합쳐 스페인이라는 큰 왕국을 세운다.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 정복 스페인 반도 남쪽에 이슬람교도의 지배를 받는 그라나다라는 왕국도 통일하고자 스페인은 10년간 전쟁을 치러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