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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공부

금융시장의 뿌리_ 로스차일드 가문(2)

1812년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는 사망하며 이런 유언을 남겼다. 

첫째, 가문 은행의 요직은 반드시 가문 내부에서 맡아야 한다. 남자만이 상업 활동을 할 수 있다.
둘째, 사촌끼리 결혼함으로써 재산의 외부 유출을 막아라. 
셋째, 재산 상황을 절대 외부에 공개하지 말라.
넷째, 재산상속시 변호사를 개입시키지 말라. 
다섯째, 장자가 우두머리다. 가족이 만장일치로 동의할 경우에만 차남을 후계자로 할 수 있다. 유서 내용 위반자는 재산 상속 건 일체를 박탈한다. 

 

아버지와 함께 유럽전역에서 금융업을 일으키던 로스차일드의 다섯 아들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크게 활약했다. 1806년 나폴레옹이 대륙 봉쇄령을 내려 유럽의 공산품 가격이 폭등했을 때는 밀수 루트를 통해 유럽 전역에 물품을 대며 크게 돈을 번다. 이때 번 돈으로 금을 구입해두었다가 전쟁으로 금값이 치솟으면 정부에 비싼 값에 팔아 차익을 남겼다. 

 

 

네이선 마이어 로스차일드

셋째 아들 네이선은 영란은행 대주주로서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유럽의 국가들과 전쟁을 하는 시기에, 나폴레옹에 맞서는 나라들에게 군자금을 빌려줄 뿐 아니라 나폴레옹에게도 비밀자금을 대주었다. 전쟁을 하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전쟁시 유일하게 인정되는 국제 화폐인 금을 다루었고, 수많은 금을 보유하게 된다. 

 

프랑스와 영국의 "워털루 전쟁"은 세계역사의 운명을 결정하는 전쟁이었다. 결과는 영국의 승리였고, 로스차일드가는 그들만의 정보망으로 전쟁의 결과를 사람들보다 먼저 알 수 있었다. 증권시장에서 큰손인 네이선은 영국 국채를 팔기 시작했고, 그의 행동은 곁에 있던 사람들로 하여금 전쟁의 결과를 반대로 오해하게 만든다. 그래서 영국 국채는 휴지조각이 됐고, 팔려 나온 주식들을 로스차이드 가문이 구입해 영국 국채를 62%나 차지하게 된다. 

 

윌리엄 세드러의 워털루 전투

 

 

전쟁이 끝난 이후 네이선은 영란은행 주식도 대부분 사들였고, 화폐 발행과 금가격을 포함해 중요한 결정들이 로스차일드가로 넘어가게 된다. 영국 정부는 화폐 발행 권한이 없었기에 영란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연 8퍼센트의 이자를 내게 된다. 영국의 세금뿐 아니라, 국채 가격, 통화 공급량까지도 로스차일드가 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로스차일드가는 영란은행을 통해 금본위제를 채택했고, 다른 은행들도 금본위제에 동참하면서 오늘날의 화폐체계가 형성되었다. 

 

 금본위제: 화폐단위의 가치와 금의 일정량의 가치가 등가관계(等價關係)를 유지하는 본위제도.

 

 

로스차일드가의 다른 활약들

로스차일드의 둘째아들 살로몬 마이어는 영국 철도를 통해 가능성을 보고 오스트리아에 철도 사업을 추진한다. 수많은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착실히 진행한 결과 철도 주식은 비싼 값에 팔려나갔고, 철도의 정식 명칭에 황제의 이름인 "페르디난트"를 붙여 오스트리아 제국의 철도인 듯한 인상을 주었다. 결국 4년 뒤 철도는 개통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페르디난트 철도

 

 

다섯째 제임스 마이어는 프랑스의 산업혁명 자금의 주요한 역할을 한다. 형의 철도 사업을 본받아 프랑스 철도사업을 성공시켰고, 남아프리카의 금광 다이아몬드 광산개발권, 러시아 석유산업까지 사업을 팽창시켰다.  

 

큰아들 암셀 마이어는 전쟁이후 통일 독일의 초대 재무장관이 되고,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와도 깊은 관계를 유지한다. 

 

이후 로스차일드 가문은 미국 금융업계도 접수했다. 로스차일드가를 통해 영국의 금이 미국으로 가 유동성을 늘려 공황이 일어났고, 이후에 미국의 금광이 발견되면서 영국으로 금이 유출되어 영국에도 공황이 발발하게 되어 세계공황이 일어난다. 그로 인해 로스차일드의 위력이 온 세상에 각인되게 된다. 

 

 

영국의 수에즈 운하 구입

프랑스의 재정원조로 건설된 이집트 수에즈 운하는 유럽과 아시아로 가는 항해시간이 반으로 줄게 만들었다. 프랑스는 수에즈 운하의 통행세를 계속 올렸고, 그 길이 언제 막힐지 몰라 영국은 항상 불안했다. 1875년 이집트 이스마일 총독의 현금문제로 수에스 운하 주식의 44%가 비밀리에 시장에 나오게 된다. 영국은 그 주식을 사기 원했고, 단기간에 현금을 마련할 수 있는 로스차일드가에게 돈을 빌리게 된다. 이때 빌린 돈이 400만 파운드라고 한다. 대영제국 역사상 최대 부호가 당시 빅토리아 여왕으로 500만 파운드를 넘지 못했다 하니 얼마나 큰 액수 인지 알 수 있다. 

 

수에즈 운하로 줄어든 항로

 

영국은 수에즈 운하의 최대 주주가 되고나서 국제 무역으로 큰 이익을 얻게 되었고, 아프리카, 아시아로 쉽게 진출할 수 있었다. 

 

 

미국 남북전쟁과 로스차일드

미국이 대농장이 발달한 남쪽과 상공업이 발달한 북쪽으로 나뉘게 될 것이라는 정보를 알게된 로스차일드는 전쟁을 통해 다시 한번 큰 기회를 잡기 원했다. 전쟁으로 막대한 전비가 필요한 링컨에게 국채를 전부 인수해주는 조건으로 고율의 이자를 부른 것이다. 하지만 링컨은 의회를 설득하여 미 재무부가 담보 없이 20년간 5%의 이자가 붙은 국채를 발행하도록 승인한다. 

 

이를 통해 담보 없는 지폐가 대량 유통되면서 금본위제를 선택한 나라를 상대로 장사하던 로스차일드의 독과점 금시장이 타격을 받는다. 그 이후 링컨은 의문의 암살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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