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신료는 유럽을 대항해 시대의 개막과 식민지 획득 시대로 이끌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유럽인들로 하여금 동방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켰다.
향신료와 동인도 항로
원나라에 의해 보호받던 실크로드를 오스만 제국이 차지하게 되자, 향신료 무역이 막히게 되어 신항로의 개척이 요구되었다. 1498년에 포르투갈이 제일 처음으로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가는 항로를 찾았다. 이후 1519년 스페인도 신항로를 발견하자 두 나라가 경쟁하다가 영국, 네덜란드 연합군에게 패해 16세기 말부터 영국과 네덜란드가 동인도 항로를 차지하게 되었고, 17세기 중엽부터는 유대인이 주도하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해상무역을 차지한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한나라에 비견되는 막강한 권리를 받았다. (아시아 독점무역권, 해상교역권 식민지 개척 및 관리권, 군대 소유권, 치외법권, 전쟁 선포권, 식민지 건설권, 요새 축조권, 자금 조달권 등등) 그 권리를 기반으로 한 손에는 무역을, 한 손에는 총을 들었던 그들은 독점 재화(정향)의 가격이 폭락하자 재고를 다 태워버리고, 현지의 나무를 뽑아버리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독점거래를 통해 100배이상의 이윤을 남기던 작물들은 인도의 후추, 스리랑카의 계피, 동인도 제도의 육두구, 몰루카 제도의 정향이었다.
삼각무역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취했던 무역의 방법은 삼각무역있었다. 수출국과 본국의 일대일 교류가 아니라, 본국과 수출국들 사이에서 지역의 실정에 따라 무역 품목을 정하여 중간상인이 되어 큰 이윤을 남기는 방법이었다. 인도네시아(향신료), 인도(후추, 무명, 다이아몬드), 일본(은, 구리), 중국(금, 비단)을 오가며 거래했다.
1622년부터는 호르무즈 항구를 이용하게됐다. 원래 호르투갈이 선점했던 호르무즈 해협을 영국이 1622년 탈환함으로써 자유교역항이 되어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하여 뱃길로 멀리 돌아갈 필요 없이 바로 갈 수 있게 되었고, 바닷길로 다니며 무역풍을 기다려야 해서 2년 걸리던 시간을 6개월로 단축할 수 있었다.
아시아와의 환차익 거래
네덜란드 상인들은 1609년부터 일본과 무역을 시작했다. 일본인 자국민 선교문제로 포르투갈, 스페인이 쫓겨나자 네덜란드 상인만 남아 무역을 하게 됐다. 오랑캐를 받아들이지 않던 중국과는 네덜란드상인들이 황제 앞에서 삼배구고 하고 나서 무역을 가능케 했다.
삼배구고: 무릎을 꿇고 양손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을 때까지 숙이기를 세 번, 또 이것을 세 번 되풀이하는 것이다.
당시 유럽은 금은 교환비율이 1: 12였던 것에 반해 중국은 1:6으로 본국에서 은을 가져와 중국에서 금으로 바꾸면 그 환차익은 두배가 되었다. 또한 명나라가 일본과의 무역을 제한하자 은을 대량 생산하던 일본에서 은을 사서 중국의 금으로 바꾸었다. 중국은 1560년대에 시행된 일조편법(공식 화폐: 은)으로 은이 공식 화폐가 되어 대량의 은이 필요했기에 은 값이 상승했던 것이다.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무역에서 유럽의 은은 지속적으로 중국으로 흘러들어 갔다. 유럽의 무역적자는 19세기 아편이 등장하여 해소된다.
동양자기
저온에서 제조 가능한 토기(700~800도), 도기 (800~1000도)는 유럽에서도 만들 수 있었지만, 고온에서 제조되는 자기(1300~1500도)는 중국, 한국에서만 가능했다. 자기를 구울 때 페르시아의 코발트를 활용해 푸른 색깔을 내는 청화백자가 탄생하게 되고 공급량에 비해 수요가 높아 그 가격이 금그릇 정도가 된다.
유럽 내에서 중국 도자기가 선풍적 인기를 끌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도자기 수입에 전력을 다한다. 그러나 1643년 명나라와 청나라의 전쟁으로 도자기 수입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도자기를 찾다 유럽에서 발간된 하멜표류기를 통해 한국과의 교역을 준비한다. 일본은 한국과의 교역으로 발생하던 이익을 잃게 될까 네덜란드의 한국 도자기 무역을 반대했고, 대신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서 데려간 전문가들이 만든 청화자기를 수출한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경제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8세기 영국에서의 유대인(2) (0) | 2021.11.01 |
---|---|
18세기 영국에서의 유대인(1) (0) | 2021.10.31 |
중상주의와 유대인(3)- 유대인과 금융 (0) | 2021.10.17 |
중상주의와 유대인(2)- 네덜란드의 부 (0) | 2021.10.11 |
중상주의와 유대인(1) (0) | 2021.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