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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공부

18세기 영국에서의 유대인(1)

영국은 16세기 말까지만해도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에 밀리는 변방국이었다. 상업을 천시했고, 오히려 정복활동과 약탈을 일삼았던 국가였다. 그런데 2백년 후 5대륙 45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세계의 통치자가 된다. 그 2백년간 영국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엘리자베스 1세의 스페인 무적함대 격파

엘리자베스 1세 치하의 영국은 당시 유럽을 주름 잡던 스페인에 대한 게릴라 전을 통해 많은 재산을 약탈할 뿐만 아니라, 해상교전을 통해 전략적으로 견제했다. 1570년대 스페인 왕 펠리페 2세와의 전쟁에서는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함으로써 해상권을 장악하게 된다. 

 

엘리자베스 1세

 

 

청교도 혁명과 크롬웰

엘리자베스 1세가 죽은 후에 왕이된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는 왕권신수설의 신봉자로 전제정치를 실시하며 의회와 대립하였지만, 1645년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군의 승리로 공화제를 설립한다. 

 

크롬웰

왕권신수설: 국왕의 권한은 인간이 아닌 신으로부터 나온다는 정치 이론
공화제: 절대 왕정의 반대로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정치체제

 

찰스 1세 처형

 

 

크롬웰은 영국과 영국 식민지와 무역하기 위해서는 영국이나 영국 식민지의 선박만 사용해야한다는 항해조례를 발표한다. 이는 무역업의 경쟁자인 네덜란드를 베제시키겠다는 의도였다. 그로인해 3년에 걸친 영국, 네덜란드 전쟁에서 영국이 이겼고, 네덜란드는 해안을 봉쇄당한다.

 

이후에도 이어진 2차, 3차 항해조례를 통해 영국은 네덜란드를 더욱 압박했고, 1665년 2차 영국, 네덜란드 전쟁이 시작되고 이번에는 네덜란드가 승리한다. 

 

 

청교도 혁명과 유대인 

청교도 혁명을 통한 공화정이 설립되면서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정책이 실시되었다. 네덜란드 유대인상인들은 랍비 "미나세 벤 이스라엘"을 영국에 파견한다. 청교도의 교리자체가 유대교와 흡사했고, 청빈을 주장하지 않았기에 유대인들은 영국에서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된다. 그래서 1656년 유대인은 영국으로의 이주를 허가 받았고 유대인의 큰 숫자가 영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영국 동인도 회사는 이때 이주해온 유대인들과 함께 '레반트 회사'를 만들어 동방무역을 활성화시키고, 서인도 지역에도 '허드슨 회사'를 설립한다. 

 

 

명예 혁명과 유대인 

크롬웰이 영국의 수호자라는 의미의  '호국경'을 자처하면서 나라를 청교도 신앙을 바탕으로 엄하게 다스리자 국민들은 크롬웰을 싫어하게 되었다. 크롬웰이 죽자 다시 찰스 2세가 왕위에 오르며 왕정이 복고 된다.

 

이후 제임스 2세가 가톨릭을 강요하자 이에 반대해 명예혁명이 일어났고, 네널란드의 오렌지 공 윌리엄과 메리 부처에게 영국의 왕이 되어달라고 요구한다. 윌리엄과 메리의 군대가 영국에 들어오자 제임스 2세는 프랑스로 망명한다. 이때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통치자를 교체했기에 명예혁명이라 부른다. 영국은 새로 왕이된 윌리엄, 메리부처는 권리선언에 싸인하게 한다. 

 

윌리엄 공과 메리 부처

 

권리선언: 의회의 허락없이는 어떤 법도 만들지 않고, 세금도 부과하지 않겠다는 맹세.

이로써 영국은 왕은 있으나, 법에 의해 통치하고 의회가 중심이 되어 나라를 이끌어가는 입헌 군주제가 된다. 

 

이때 윌리엄 왕을 따라 영국으로 건너간 인원중에 8천명 정도가 영국으로 옮겨가게 된다.  영국의회는 관용법으로 신앙의 자유를 허락했고 유대인들이 자유롭게 영국사회로 진입하게 한다. 이로써 네덜란드를 부흥시켰던 금융, 사업방식이 영국으로 건너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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