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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공부

금융시장의 뿌리_ 로스차일드 가문(1)

유대인 역사의 클라이 맥스는 사실상 로스차일드가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전까지는 스페인계 세파르디 유대인들이 주도해 왔다면, 로스차일드가 이후로는 독일계 아슈케나지가 유대인 사회를 주도하게 된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국제적인 대규모 금융산업을 일으킨 로스차일드 가문을 알지 못하고는 오늘날 세계 금융시장의 뿌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유대인 이야기 p.476

 

로스차일드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게토 출신이다(게토: 중세 이후의 유럽 각 지역에서 유대인을 강제 격리하기 위해 설정한 유대인 거주지역).

 

독일 국내적으로는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대자본이 필요했고, 국제적으로는 무역증가에 따른 대금결제의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또한 유럽이 나폴레옹전쟁으로 휩쓸리고 있었다. 

 

로스차일드는 이런 어려운 시기에 다섯 아들을 유럽 5대 도시에 보내어 어음결제 은행을 세운다. 그 은행의 이름이 "로스차일드 상사"였다. 

 

 

 

 

로스차일드 금융업의 시작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는 랍비가 되려고 신학교에 들어간다. 하지만, 학비문제로 학업을 중단하고 '오펜하이머'라는  유대계 은행에서 일을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금융업의 본질을 파악한다. 

 

7년후 로스차일드는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가 하시던 고물상, 골동품상에 대부업을 추가한다. 이때 유럽에서 가장 부자 귀족인 헤센 카젤 공국의 빌헬름 왕자와 관계를 맺게 된다. 처음에는 진귀한 동전, 골동품들을 거래했지만 신뢰를 쌓게되면서 영국 궁전의 금융업무를 시작하게 된다. 

 

1775년 미국의 독립전쟁시기 로스차일드 가문은 국가간 어음 결제 금융거래를 시작한다. 

 

 

빌헬름 9세와의 인연

빌헬름 공이 1785년 독일 헤센공굴의 왕위를 승계해 빌헬름 9세로 등극하자 로스차일드가는 빌헬름의 크고 작은 심부름을 처리해주게 된다. 또한 빌헬름 9세의 재무장관 '부데루스'와의 관계안에 외부로 노출을 꺼리는 대부와 대출금 회수등의 일등을 도맡아 처리하게 되고, 1800년대에 이르러 로스차일드 가는 제일가는 유대인 갑부가 된다. 

 

빌헬름 9세

 

 

나폴레옹군이 빌헬름 9세의 재산과 채권을 찾아내던 시기, 로스차일드가는 목숨을 걸고 빌헬름의 돈을 지키게 되고 그 일로 한 가족처럼 서로 믿는 사이가 된다. 그래서 전쟁이 끝난 후 빌헬름 9세가 다시 돌아왔을 때, 로스차일드 가문은 빌헬름 9세의 사유재산을 관리하게 된다. 

 

 

로스차일드의 다섯 아들

첫째 암셀 마이어는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기위해 프랑크푸르트에 남고, 둘째 살로몬 마이어는 빌헬름 9세의 재정자문관으로 조정에 들어간다. 가장 영리했던 셋째 네이선 마이어는 영국 맨체스터에 있다가 런던으로 가게 된다. 넷째  칼 마이어는 나폴리로, 다섯째 제임스 마이어는 파리로 간다. 이들은 각 지역의 정보를 빠르게 공유하며 다국적 금융네트워크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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