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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공부

스페인 제국의 영광과 몰락(1)

스페인에게 1492년은 아주 뜻깊은 해이다.

  • 이사벨 여왕의 이베리아 반도 통일 "레콘키스타"
  • 콜럼버스의 신대륙의 발견
  • 유대인 추방령

 

 

스페인, 평화로운 공존의 시기

로마제국 이후 최초로 출현한 제국인 스페인에는 유대인이 많이 살고 있었다. 스페인 왕실은 재정적 도움뿐만 아니라, 나라 전반을 다스리는데 유대인들을 의지했다. 

11세기부터 1492년 레콘키스타 달성전까지 스페인 왕국은 가톨릭교도와 유대교도, 이슬람교도 간에 평화로운 공존이 이어졌다. 특히 유대인들은 13세기 스페인의 왕 알폰소 10세를 만나 문화 창달에 크게 기여했다.

 

알폰소 10세

 

알폰소 10세

유대인 학자, 아랍인 철학가, 사상가를 동원해 코란이나, 탈무드, 카발라, 인도의 동화까지 번역시킴
아랍어로 번역된 그리스 고전들(철학, 의학, 천문학, 천체학, 수학, 문학등)을 다시 라틴어로 번역하여 유럽에 알리게 됨. 

이로써 스페인의 수도 '톨레도'는 중세 최대의 문화도시가 됨

 

 

 

1492, 레콘키스타의 완성

레콘키스타는 '재정복'이라는 의미로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었다. 이때 많은 이슬람교도가 현지에 남아 개종하였지만, 그들을 박해하였고 비가톨릭 신자인 유대인에게도 악행을 행했다. 

 

이사벨 여왕

 

 

 

중세를 암흑으로 이끈 흑사병

14세기부터 중세유럽은 백년전쟁과 함께 흑사병으로 암흑의 시대를 보냈다. 흑사병은 유럽 전역을 휩쓸었는데, 유럽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식량이 부족해 병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져 그 여파가 더욱 심각하였다. 흑사병은 8년마다 주기적 발생하여 유럽 인구 3/4을 잃었다. 인구가 줄어들자 농업, 수공업, 상업들이 쇠퇴하여 유럽 경제는 거의 파멸 상태에 빠졌다.   

 

질 르 뮈지(1272~1352)의 ‘1349년 투르네의 흑사병’
흑사병 전파지도

 

이 시기 몽골제국을 통해 광대한 교역체계가 만들어지면서 병이 세계각지로 확산되었다. 중앙아시아의 풍토병이었던 페스트는 후추 무역로를 따라 동로마제국에서 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이 시기에는 병의 원인을 '하늘의 뜻'으로 돌리며 극심한 광기와 미신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서민들은 평소 고리대금업과 전당포등으로 돈 되는 사업을 모조리 차지했던 유대인들을 미워했는데, 흑사병의 원인이 유대인들 때문에라는 소문이 돌게 되자 유대인에 대한 폭동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의 정결습관으로 흑사병이 유대인들에게는 잘 퍼지지 않았다.) 

 

 

흑사병으로 인한 유대인 박해

흑사병으로 인한 유대인 학살 이후 유대교는 금지되었다. 유대인들은 개종하거나, 이주해야 했다. 1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은 스페인을 떠났고, 가톨릭으로 개종했던 유대교인들을 '마라노(돼지, 탐욕자라는 뜻)'로 불리며 겉으로는 개종한 척 하지만 은밀히 유대교를 신봉한다는 의혹에 여전히 위협받았다. 

 

 

 

밀레도 칙령과 종교재판

스페인에는 개종인 유대인들의 숫자가 상당했고, 마라노들을 공격하는 소요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이사벨여왕은 유대인들을 그들만의 거주지역에 살게 해 기독교도들과 분리하는 톨레도 칙령(1480)을 반포했다. 가짜로 개종한 유대인 '마라노'에게 위협을 느낀 진정한 개종자 '콘베르소'들은 영향력을 행사하여 왕실이 직접 주관하는 종교재판(1480)도 시작되었다.  

 

1481년에 시작된 첫 종교재판의 처형은 1483년도 스페인 전국에 확대되었고, 이후, 3세기를 거치며 34만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또한 이 시기 점쟁이나 요술쟁이들을 마녀로 취급해 수많은 마녀재판이 이어졌다.

(프랑스의 잔다르크도 마녀라는 이유로 화형당했다.) 

 

종교제판을 통한 화형장면

 

 

유대인 추방뒤에 숨겨진 실리적 이유

스페인 왕국은 전쟁으로 잃었던 민심을 추스르고, 바닥난 국고를 재정비하며 신항로 탐사에 들어갈 왕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1492년 3월 31일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다. 부유했던 유대인의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 유대인 추방령을 내린 것이다.  4개월 이내의 추방명령과 함께 화폐, 금, 은을 가지고 나갈 수 없게 막아 유대인들은 헐값으로 재산을 팔아 치울 수밖에 없었다. 이때 개종하지 않은 유대인 17만 명이 추방당했고, 이로써 종교재판을 피해 빠져나간 사람까지 스페인을 떠난 유대인이 26만 명에 달했다. 도시가 크지 않던 이 시기에 이 숫자는 대대적인 민족이동으로 볼 수 있다.  

 

이로써 이베리아 반도에서 영화를 누렸던 유대인 사회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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