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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공부

(중세)영국의 기사와 일본의 사무라이

영국과 일본, 섬이라는 것밖에 공통점이 없는 이 두나라는 봉건제를 토대로 영주에게 충성하는 기사가 있었다. 오늘은 기사와 사무라이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영국의 기사

잉글랜드가 봉건제로 인해 기사계급이 생기고 나서, 기독교 지도자들은 기사들에게 '기사도'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기사는
왕에게 충성을 바치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교회와 수도사, 사제를 보호해야하며
여자와 과부, 고아 같은 약자를 돌봐야 한다.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일곱 살 때부터 페이지라는 훈련생이 되어 말 타는 법, 창이나 칼 쓰는 법을 배운다. 열네 살 무렵이 되면 스콰이어가 되어 기사를 시중을 들며 기사다운 예절과 법도를 배우게 된다.  때가 되어 기사가 되면 영주의 성에 가서 교회와 영주에게 충성을 바칠 것을 맹세하고 기사로 임명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갑옷/병기 전시관(중세 기사 재현상)

 

 

기사들은 기사가 된 첫해에 토너먼트라는 대회에 출전하여 겨루게 되는데 갑옷을 입고, 쇠 장갑을 끼며, 문장이 새겨진 방패를 들고 말에 올라타 창으로 겨룬다. 

 

 

 

일본의 사무라이

야마토 왕조가 다스리던 시기, 일본의 왕의 거의 신으로 여겨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일은 "다이묘"라고 불리는 영주들에게 맡겼다. 그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사들을 고용했고, 땅과 돈을 주며 충성과 보호를 요구했다. 

 

 

 

사무라이도 갑옷을 입고, "카타나"라는 휘어진 칼을 썼다. 사무라이들에게도 "무사도"라는 규율이 있었다. 

 

사무라이는
하늘이 무너져도 다이묘(영주)를 보호하고,
다이묘를 위해 싸울 때는
반드시 이기거나, 죽어야 한다.
비겁하게 행동하거나, 죽음을 두려워했다면
스스로 배를 가르고 죽어야 한다. (세푸코: 할복자살)

 

 

 

 

사무라이는 싸움만 하지는 않았다. 전시 상황이 아닐 때 그들은 정원을 가꾸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었다. 문무를 고루 갖추었던 계급이었다. 

 

 

사무라이-마쓰오 바쇼(자연을 예찬하는 시인 '하이쿠'의 명인으로 꼽힌다.)
사무라이- 오다 노부나가(전쟁터에 나가기 전 병사들 앞에서 우아한 부채춤을 추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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