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프랑크 노르망디에 살던 바이킹은 바다 건너 브리튼 섬도 공격했다. 바이킹은 무자비하게 브리튼 땅을 파괴했는데, 브리튼 섬은 여러 나라로 나뉘어 있어서 바이킹을 대응할 만한 힘이 없었다. '그레이트 아미'는 잉글랜드에 상륙하여 노략질을 하고 그곳에 정착하기도 했다. 바이킹은 잉글랜드 전체를 차지하려는 마음을 먹었다.
잉글랜드 남부를 차지하고 있던 웨섹스 왕국에 바이킹이 쳐들어 왔을 때 처음에는 금을 주어 돌아가게 했지만, 그 일들이 반복되자 더 강한 힘을 갖추기 위해 '앨프레드'를 지도자로 뽑았다. 그는 군사를 뽑아 오랜 시간 훈련하여 솔즈베리 평원에서 바이킹 '귀솜'과의 전투를 벌였고, 마침내 승리하여 웨섹스를 지켜냈다.
이후에도 바이킹의 침략은 계속되었고, 앨프레드의 아들 에드워드가 지도자가 되어 잉글랜드 영토를 일부 되찾기도 했지만, 앨프레드 사후 200년 '에셀레드 왕'이 바이킹의 '스벤 포크비어드'에게 패배하여 잉글랜드를 바이킹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결국 잉글랜드는 앵글로 색슨족과 바이킹이 함께 어울려 사는 나라가 되었다.
헤이스팅스 전투
긴 시간이 흐른 뒤, 웨섹스 왕조의 참회왕 에드워드는 죽을 때가 다 되었는데도 왕위를 물려받을 아들이 없었다. 그때 헤럴드라는 귀족이 왕위를 이을 인물로 거론 되었는데, 에드워드의 먼 친척 윌리엄은 자신이 왕위를 물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헤럴드가 난파당해 노르망디에 갔을 때 윌리엄은 헤럴드로 하여금 통치권을 자신에게 넘겨주겠다는 약속을 시킨다. 잉글랜드에 돌아간 헤럴드는 그 약속을 무시하고 왕이 되지만, 윌리엄이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로 쳐들어 온다. 이 두 군대는 헤이스팅스 지역에서 전투를 하게 된다.
정복왕 윌리엄의 노르만 정복
결렬한 전투끝에 윌리엄과 함께한 노르만 병사들이 승리하게 된다. 헤럴드는 "불쌍한 헤럴드"라는 이름으로 묘비에 묻히고, 윌리엄은 "정복왕 윌리엄"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잉글랜드가 또 한 번 외국인들에게 정복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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