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왕 윌리엄이 헤이스팅 전투에서 승리해 노르만이 잉글랜드 땅을 정복하게 된 이후, 잉글랜드는 노르만족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다.
영어
오늘날의 영어는 여러 가지 언어가 뒤섞여 있는 언어이다. 고대 영어는 앵글로 색슨족이 잉글랜드에 쳐들어와서부터 사용한 언어로 지금의 언어와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부분이 보인다. (켈트족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로 쫓겨 난 후로도 계속 켈트어를 사용했고, 잉글랜드와의 왕래가 없어 두 언어는 전혀 영향을 주고받지 않았다.)
이후 앵글로 색슨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아우구스티누스와 수도사들이 잉글랜드에 건너갔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로부터 많은 표현이 영어에 흡수된다. 바이킹들이 쳐들어 왔을 때도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어휘들이 들어와 영향을 미치는데, 그 예가 되는 것이 북유럽 신의 이름이 된 일곱 요일의 명칭이다.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이후 영어에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노르망디 공국의 공작이었던 윌리엄과 그의 귀족 부하들은 나라를 통치할 때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부자나 권세자등의 귀족층까지 프랑스어를 사용하게 되자 영어를 쓰던 평민층도 프랑스어에 영향을 받게 되어 영어에 변화가 있었다.
봉건제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던 잉글랜드에서는 국왕이 전쟁지도자의 역할만을 했다. 하지만, 정복왕 윌리엄은 자신이 나라를 통치하기 원했다. 그래서 잉글랜등의 전 국토가 자신의 소유라고 선언하고, 자신과 가까운 기사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었다. 대신 그 신하들에게 나라를 위해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돈과 군사력을 받기로 한다.
땅을 받은 부유한 기사들을 영주라고 하는데, 영주들은 또다시 부하 기사와 농민들에게 땅을 나누어주고 수확의 일부를 자신에게 바치게 한다. 이렇게 토지를 매개로 하여 형성된 계약의 관계를 봉건제라고 하고, 이것은 노르만인들의 전통 방식이었다.
봉건제가 처음 실시됐을 때 잉글랜드 농민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영주들의 집에 불까지 지르는 이들을 맞서기 위해 높다란 언덕위에 돌로 성을 지었다. 두꺼운 벽으로 성을 쌓고, 성을 두른 연못(해자)을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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