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공부 썸네일형 리스트형 (중세)영국의 기사와 일본의 사무라이 영국과 일본, 섬이라는 것밖에 공통점이 없는 이 두나라는 봉건제를 토대로 영주에게 충성하는 기사가 있었다. 오늘은 기사와 사무라이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영국의 기사 잉글랜드가 봉건제로 인해 기사계급이 생기고 나서, 기독교 지도자들은 기사들에게 '기사도'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기사는 왕에게 충성을 바치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교회와 수도사, 사제를 보호해야하며 여자와 과부, 고아 같은 약자를 돌봐야 한다.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일곱 살 때부터 페이지라는 훈련생이 되어 말 타는 법, 창이나 칼 쓰는 법을 배운다. 열네 살 무렵이 되면 스콰이어가 되어 기사를 시중을 들며 기사다운 예절과 법도를 배우게 된다. 때가 되어 기사가 되면 영주의 성에 가서 교회와 영주에게 충성을 바칠 것을 맹세하고 기사로 임명된다.. 더보기 (중세)노르만인들이 잉글랜드에 미친 영향 정복왕 윌리엄이 헤이스팅 전투에서 승리해 노르만이 잉글랜드 땅을 정복하게 된 이후, 잉글랜드는 노르만족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다. 영어 오늘날의 영어는 여러 가지 언어가 뒤섞여 있는 언어이다. 고대 영어는 앵글로 색슨족이 잉글랜드에 쳐들어와서부터 사용한 언어로 지금의 언어와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부분이 보인다. (켈트족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로 쫓겨 난 후로도 계속 켈트어를 사용했고, 잉글랜드와의 왕래가 없어 두 언어는 전혀 영향을 주고받지 않았다.) 이후 앵글로 색슨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아우구스티누스와 수도사들이 잉글랜드에 건너갔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로부터 많은 표현이 영어에 흡수된다. 바이킹들이 쳐들어 왔을 때도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어휘들이 들어와 영향을 미치는데, 그 예가 되는 .. 더보기 (중세)잉글랜드 초기의 왕들 서부 프랑크 노르망디에 살던 바이킹은 바다 건너 브리튼 섬도 공격했다. 바이킹은 무자비하게 브리튼 땅을 파괴했는데, 브리튼 섬은 여러 나라로 나뉘어 있어서 바이킹을 대응할 만한 힘이 없었다. '그레이트 아미'는 잉글랜드에 상륙하여 노략질을 하고 그곳에 정착하기도 했다. 바이킹은 잉글랜드 전체를 차지하려는 마음을 먹었다. 잉글랜드 남부를 차지하고 있던 웨섹스 왕국에 바이킹이 쳐들어 왔을 때 처음에는 금을 주어 돌아가게 했지만, 그 일들이 반복되자 더 강한 힘을 갖추기 위해 '앨프레드'를 지도자로 뽑았다. 그는 군사를 뽑아 오랜 시간 훈련하여 솔즈베리 평원에서 바이킹 '귀솜'과의 전투를 벌였고, 마침내 승리하여 웨섹스를 지켜냈다. 이후에도 바이킹의 침략은 계속되었고, 앨프레드의 아들 에드워드가 지도자가 되어.. 더보기 (중세)노르만 인, 바이킹의 역사 프랑크 왕국이 넓은 영토를 다스리던 시절 북쪽으로부터 몹시 거칠고 사나운 야만인들이 배를 타고 나타났다. 이들은 "노르만 인, 바이킹"이라고 부른다. 북해를 향해 쭉 뻗어 나와있는 땅이 스칸디나비아 반도인데, 여기에 살던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인들이 노르만 인들이다. 이들은 경작할 땅이 좁아지면서 새로운 땅을 찾아 바다로 모험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샤를마뉴 통치 이후 프랑크 왕국이 세 나라로 갈라지게 되면서 이들 바이킹을 당해 낼 힘이 없었고, 서부 프랑크의 땅을 내주게 되었다. 그래서 이 땅을 노르만의 땅, "노르망디"라고 부른다. 바이킹은 스페인, 지중해, 대서양으로도 진출했다. 노르웨이에 살던 빨강 머리 에리크가 대서양에 한 섬 아이슬란드에 가서 정착한다. 에리크는 다시 새로운 땅을 찾아 .. 더보기 (중세)프랑스의 위대한 왕들 스페인 땅을 점령한 이슬람 군대는 프랑스까지 건너가려고 했다. 그러나 프랑크 왕국에는 새 국왕 "카를 마르텔 Karl Martell"이 있었다. 카를 마르텔은 왕위에 오르기 위해 힘든 우여곡절을 겪었기 때문에 '쇠망치'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결국 '투르 푸아티에 전투'에서 카를 마르텔과 함께한 프랑크 군대는 이슬람 군대를 이겼다. 카롤링거 르네상스 프랑크 왕국의 첫 통치자였던 클로비스, 쇠망치라는 별명을 가진 카를 마르텔에 이어, 카를 마르텔의 손자인 "샤를마뉴"가 왕이 되었다. 프랑크 왕국의 왕 중에서도 가장 위대했던 샤를마뉴는 왕국을 풍요롭게 만들고 기독교도 더 번성하게 하기를 원했다. 성경의 사본을 제작하고, 수도사들이 전국을 돌아다닐 수 있도록 도로를 닦았으며 학교를 세워.. 더보기 (중세)이베리아 반도에 진출한 이슬람 이베리아에 자리 잡았던 야만인 종족 서고트족의 왕이 죽자, 왕위를 누가 이을 것인가에 대한 싸움이 벌어졌다. 죽은 왕의 아들인가, 귀족들이 지지했던 전사 로드리고 인가? 이런 다툼이 지속되자, 왕의 아들은 북아프리카에 진 치고 있던 이슬람 군대의 사령관이었던 '타리크 이븐 지야드'에게 도움을 청한다. 왕위 다툼보다 스페인 땅을 탐내던 타리크는 군대를 데리고 북아프리카의 캉헤르(텐지어) 지역까지 오게 되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반도에 이르게 된다. 결국 죽은 왕의 아들도, 로드리고도 왕이 되지 못했고, 서고트족은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름의 기원 타리크가 이베리아 반도에 처음 도착하여 올라섰던 그 바위를 "자발 알 타리크"라 부르는데, 타리크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후대 사람들은 자발 알 .. 더보기 (중세)프랑크 왕국 이탈리아로부터 위로 올라가 알프스 산맥을 넘으면 있는, 지중해 바로 위의 북쪽 일대를 골(갈리아) 지방이라고 한다. 이곳은 로마제국의 땅이었지만, 야만인들이 쳐 들어와 살면서 로마의 관습을 받아들이며 문명화가 되었다. 이 땅에 들어와 정착한 야만인들은 프랑크족, 부르군트 족, 알라마니 족이었다. 기존에 살던 로마인들까지 골 지방에 함께하면서 서로 사이는 나빴지만, 훈족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힘을 합쳤다. 프랑크의 족장 메로비스는 군대를 끌고 나가 훈족을 물리쳤지만, 훈족이 사라지자 또다시 사이가 나빠졌다. 메로비스의 손자 클로비스는 골지방 전체를 하나의 왕국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부르군트족의 공주 클로틸라와 결혼했고, 여러 전쟁을 통해 골 지방 전체를 다스리게 됐다. 그 나라가 바로 "프랑크 왕국"이.. 더보기 (중세)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는 태평양 저 아래로 내려가면 있는 커다란 섬입니다. 섬이 하도 커서 '대륙'이라고 부르지요. 오스트레일리아는 왕조나 통치자 없이 유목생활을 하며 살았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살던 유목민들을 '에보리진 Aborigines'라고 불러요. 수렵과 채집 생활을 했고, 여러 가족으로 구성된 홀드로 무리생활을 했습니다. 뉴질랜드는 오스트레일리아 보다 더 아래쪽에 작은 두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뉴질랜드의 최초 주민인 마오리족은 태평양에 수많은 섬이 모여있는 폴리네시아 제도에서 이주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오리족은 얼굴가득 무늬를 그리고 하카 춤을 추는 모습으로 많이 알려져있는데요. 이는 전투를 벌이기 위해 평지에 집결해 서로를 욕보이면서 춤을 추는 것으로 무릎을 치고, 눈을 부릅뜨고,.. 더보기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