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공부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 중세에 살던 사람들은 수많은 침략자들을 감당해야했지만, 가장 무서웠던 적은 바로 흑사병(페스트)이었다. 중국의 변방으로부터 시작된 괴이한 병은 흑해 근처에 살던 사람들부터 걸리기 시작했고, 그로인해 유럽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 흑사병은 쥐의 몸에 기생하는 벼룩이 옮겼던 전염병으로 불결했던 중세의 삶은 병에 더욱 취약했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신의 심판이라 여겼고, 미신적인 방법이 횡횡하였다. 흑사병이 전 유럽을 휩쓸고 지나가자 도시와 들판은 황폐해졌고, 농사를 지을 만한 일손이 부족했다. 비싼 임금에 귀족들은 점점 가난해졌고, 농부들은 부유해져 자신의 토지를 갖게 됐다. 흑사병을 계기로 토지를 빌리는 대가로 촌민들이 귀족들의 대농장을 경장해 주는 봉건제가 마침내 무너져 내린것이다. 사람.. 더보기
(중세)오스만 제국 비잔틴 제국은 이슬람 교도들과 몽골인들의 침략을 막아내고, 러시아인들과 많은 침략군들에게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오스만 투르크 족에게는 패배하고 만다. 오스만 투르크 인들은 아시아 대륙의 중부 일대에 살던 유목민이었는데, 몽골 군대가 아시아를 휩쓸자 서쪽으로 달아났다. 이들은 이슬람 교도 상인들과 거래하다 이슬람교도가 되었고, 농부나 목동으로 살아가거나 이슬람교를 전파하는 병사로도 살았다. 투르크 인들이 이슬람교를 전하는 만큼 오스만 투르크 왕국도 점점더 넓어졌다. 술탄이라 불리는 국왕의 지도아래 비잔틴제국을 계속 공격했다. 결국 비잔틴 황제에게는 콘스탄티노플 성만 남게되었고, 그 마저도 새로운 술탄 '정복자 메메드'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메메드는 기독교 성당이었던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이슬람 교도의 .. 더보기
(중세) 러시아인의 시작 옛 로마 제국의 동쪽 절반인 비잔틴제국의 수도는 콘스탄티노플이다. 역사적으로 콘스탄티노플은 육지쪽 두꺼운 성벽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이슬람군도, 몽골군도 무너뜨릴 수 없는 지역이었다. 콘스탄티노플 북쪽유럽 대륙 한가운데 살던 루스족은 바이킹 '루릭'의 후손이었는데, 콘스탄티노플을 '위대한 도시'라 일컬으며 그 땅을 빼앗고 싶었다. 하지만, 바다에 불을 질러 방어하는 비잔틴 군대 앞에 무력했고, 대신 화친 정책을 폈다. 루스족중의 한 나라인 키예프 국의 왕자 '블라디미르'라는 비잔틴 황제의 경호를 맡을 6천명의 '바랑 인 호위대'를 보낸다. 결국 브라디미르는 비잔틴제국의 공주와 결혼을 하고 동방 정교회의 신자가 된다. 루스 족의 나라는 "러시아"로 알려지게 된다. 러시아는 여러개의 작은 국가로 이루어져.. 더보기
(중세) 유럽과 중국의 교역 유럽 땅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중국이 세상 저편에 있는 나라였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향신료와 보석, 비단을 사기 위해 한번 방문하기 위해 5년이나 걸리는 험준한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을 방문했다. 원나라를 다스렸던 쿠빌라이칸은 유럽과 교역을 하면 중국이 더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몽골의 병사들을 시켜 실크로드를 안전하게 지켰다. 마르코 폴로는 이탈리아의 상인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중국으로 가게 되고 이 기간의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여 "동방견문록"이라는 책을 쓰게 된다. 이 책을 통해 당시 중국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쿠빌라이칸이 죽자 몽골을 여러 부족이 나누어 다스리게 되었고, 몽골의 힘이 약해지니 실크로드로 통행이 어렵게 된다. 결국 몽골인들이 다스리던 원나라는 멸망하고, 명나라가 새롭게.. 더보기
(중세) 몽골 제국 중국 북쪽의 춥고 황량한 산악 지대에 살던 몽골인은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유목민으로 살고 있었다. 약카족 추장의 아들이었던 '칭기즈칸'은 몽골인들을 하나로 뭉쳐 중국까지 차지 하고 싶었다. 칭기즈칸은 족장이 되자마자 무자비한 전쟁을 치러 몽골 부족들을 하나로 합친 후, 중국 본토에 쳐들어가 베이징을 정복했다. 이후 군대를 서쪽으로 돌려 이슬람 제국과 비잔틴 제국의 일부까지 정복하여 동쪽으로는 황해로부터 서쪽으로는 지중해까지 이르렀다.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칸'은 중국의 황제가 되었고, 새로운 왕조인 '원나라'를 세웠다. 동쪽의 나라들까지 정복하고 싶었던 쿠빌라이칸은 고려 정복 이후, 일본도 공격했다. 하지만, 해전에 약했던 원나라는 일본과의 2번의 전쟁 때 실패하고 만다.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더보기
(중세) 흩어지는 유대인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이 세운 도시였다. 하지만 자신들의 영토인 예루살렘을 떠나 세계각지역에 흩어져 살게 되는데, 그 이유를 살펴보자. 로마의 통치 로마 제국은 아주 강력했다. 유대인의 땅을 지배하고 그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물리며, 종교활동도 제한하였다. 유대인들은 이에 반란을 일으켜 예수살렘을 점령했지만, 로마는 다시 대군을 보내어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유대인을 포로로 잡았다. 로마제국을 향한 유대인들의 반란은 식을 줄 몰랐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대인들을 다른 지역으로 분산시키게 된다. 이에 위기를 느낀 유대인들은 "요하난 벤 자카이"라는 유대인 학자를 중심으로 유대교 경전인 '토라'를 중심으로 살아간다면 흩어져 살더라도 여전히 유대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흩어진 유대인 '디아스포라' 사방으로 흩.. 더보기
(중세) 영국의 국왕들 사자왕 리처드 십자군 전쟁이 있던 시기, 살라딘에게 예루살렘을 다시 빼앗겼을 때부터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기를 바랐던 영국의 왕자 리처드는 자신이 국왕이 되자마자 군대를 모아서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리처드는 프랑스 국왕과 오스트리아 공작의 군대와 합세했지만, 서로의 입지를 다투다 예루살람에 리처드만 남게된다. 리처드는 영국의 십자군 부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싸웠다. 한편, 리처드가 떠나온 영국에서는 막내동생 존이 왕위를 가로챘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왕위를 되찾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가던 길에 사이가 틀어졌던 오스트리아 공작에게 사로잡혀 갇히게 된다. 영국내에선 리처드 왕이 죽은 줄 알았다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되어 비싼 몸 값을 주고 다시 영국으로 데려오게 되지만, 결국.. 더보기
(중세) 십자군 전쟁시대 아라비아반도에서 시작된 이슬람은 지중해 동쪽 해안과 북쪽으로 카스피해, 동쪽으로 인도까지 그 세력을 뻗쳤다. 과거 로마제국의 번성기보다 훨씬 더 큰 범위였다. 이슬람교도들은 모든 문명세계에 이슬람교를 전파하고 싶어 했고, 이에 대해 각 나라들과 기독교 지도자들은 불안해했다. 이슬람은 기독교도들이 성지인 예루살렘에 방문하지 못하도록 한다. 예루살렘은 이슬람교도들의 성지일 뿐만아니라, 유대교와 기독교도들의 성지였기 때문에 세 종교에게 의미 있는 지역이었는데 이슬람이 기독교인들의 순례를 금지시킨 것이다. 급기야 비잔틴 제국의 황제는 교황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고 이슬람 세력을 막기 위해 여러 기독교 왕국의 기사들을 모아 예루살렘으로 십자군을 보내게 된다.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십자군들은 긴 전쟁으로 이슬람 .. 더보기